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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생활

김장김치

by 땡땡동산 2022.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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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

한국에서 김장을 담글 때는 힘이 많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대가족이었던 우리 집은 엄청난 양의 배추를 절이고, 배추 속을 만들었다. 아버지께서 채칼로 무를 썰어 주시고 나는 엄마를 도와 그 외의 채소를 준비했다. 이상하게 김장을 하는 날이면 추웠다. 발이 얼고 손이 시려도 참아가면서 엄마를 도왔던 것을 지금 떠올려보면 좋은 추억이 되었지만 그때는 어쩔 수 없이 했던 것이다. 김장을 할 때면 엄마는 맛있는 밥을 하셨다. 평소에 잘 먹지 않는 특별한 밥이었다. 찹쌀에 팥, 밤, 콩 등을 넣고 지으셨는데 지금도 생각하면 침이 고이는 밥이다. 갓 지은 밥에 금방 만든 겉절이를 올려서 먹으면 정말 맛있었다. 김장을 도와주러 오신 동네 아주머니들도 엄마가 지으신 밥을 드시면서 칭찬을 많이 하셨다. 

내가 살던 고향은 북쪽에 가까워서 겨울에는 무척 추웠다. 지금은 김치냉장고가 있어서 집안에서 편안하게 맛있는 김치를  아무때나 먹을 수 있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땅에 항아리를 묻었다. 항아리 크기에 맞게 땅을 파서 묻어 놓으면 담근 김치를 담아서 보관했다. 그러면 봄까지 맛있는 김치를 먹을 수 있었다. 봄이 되면 다시 땅을 파서 항아리를 꺼내어 씻어 놓아야 하는 일들을 한결같이 엄마는 해오셨다. 김치냉장고를 살 때까지...

한국에서 처럼 김장을 하는 것은 무리이다. 장소도 문제지만 식기가 없다. 작은 살림만 하고 있어서 김장을 담글 정도의 식기들이 없다. 산다면 간단하지만 보관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사는 것이 어려웠다. 그 와중에 터득한 것이 김장전용 비닐봉지였다. 장소를 많이 차지하지 않고 뒤집기도 편해서 자주 사용한다. 몇 명이 모여서 김장이라고 표현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김치를 담그면서 떠들고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가곤 했다. 

배추 자체가 한국과 달라서 소금에 절이는 것도 어려웠다. 몇 번 하다 보니 익숙해져서 적절한 방법을 알게 되었고 지금은 입에 맞는 김치를 담게  되었다. 김치를 만들 때면 한국에서 처럼 동네잔치 정도는 아니지만 모일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 된다. 기억을 되살려 맛있는 밥을 준비해 먹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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