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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생활

추석

by 땡땡동산 2024.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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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추석

추석을 하면 제일 먼저 제사상이나 음식을 만드는 고생스러운 것들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둥그런 보름달이다. 어쩌다 추석당일에 보름달을 못 보게 되면 다음날이라도 꼭 보려고 한다. '한가위만큼 풍성하라'는 말처럼 꼭 현실적으로 뭔가 많이 있지 않아도 꽉 찬 보름달을 보면 몸과 마음이 누구 못지않은 부자가 된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것이 다르겠지만 나는 다른 달의 보름달보다 더 꽉 찬 느낌을 받는다. 

일본의 추석은 양력이라서 보름달 하고 관계가 없다. 8월 15일 이틀 전인 13일에 묘소에 가서 향을 피운 다음 조상을 모셔온다. 그리고 16일에 묘소로 배웅을 한다. 15일 전후해서 친척들이 선물이나 봉투를 준비해서 방문을 하고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한다. 대부분이 한국하고 비슷하지만 집안에 제단이 항상 준비되어 있는 것은 큰 차이이다. 집집마다 크기의 차이는 있지만 집을 방문해 보면 제단이 있다. 특별한 사연이 없어도 항상 기도를 하거나 집을 나갈 때나 돌아와서는 다녀왔다는 보고를 하는 가정이 많다. 제단에는 꽃이나 차, 물, 그날의 특별한 것 등을 올린다. 한국처럼 제단에 올린 음식을 가족이 음복을 하지는 않는다. 아주 작은 그릇에 음식을 올리고 적당한 시간이 지나면 그대로 버린다. 과일을 올려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아깝지만 여기만의 방식이므로 시댁을 갔을 때는 나도 버리게 되었다. 

여기의 추석은 한국처럼 벌초 같은 것을 한다. 잔디대신 대리석을 닦고 주위에 자란 잡초를 뽑는다. 공동묘지에 가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도구들이 준비되어 있다. 가계의 묘가 있는 곳에 가서 물을 떠다가 청소를 하면 된다. 한국의 묘들은 산속이나 인가와 떨어진 곳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일본은 주택가에 있다. 대대로 근처에 사는 집들이 많아서 묘를 가까이에 두고 자주 가서 꽃이나 생전에 좋아하던 것들을 놓기도 한다. 주택가에 있어서 묘지를 지날 때는 향냄새를 풍긴다. 한국에서는 묘지 근처를 지날 때는 괜히 섬뜻하고 무서웠던 기억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그냥 하나의 건물이나 이웃처럼 여기게 되었다. 

일본은 화장을 하면 유골을 분쇄하지 않고 그대로 수거해서 묘비 아래에 있는 장소에 넣는다. 용기는 빼서 자연스럽게 흙으로 섞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다른 곳은 콘크리트나 대리석으로 되어 있지만 유골이 들어가는 장소는 흙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묻는 것이 아니다. 평평하게 되어 있는 곳에 선조들의 뼈가 섞이지 않도록 간격을 두고 놓아둔다. 시간이 지나

포화상태가 되면 제일 먼저 돌아가신 분의 유골을 파서 묻고 공간을 만든다. 장례식에서 유골을 대하는 일본사람들을 보면 감동을 받는다. 하나 하나 정성으로 집어 들어서 항아리에 담고 묘에 와서도 장지사들이 소홀하지 않은 행동으로 마무리를 해준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가족의 묘지를 갖고 있는 경우이고 납골을 하는 경우는 조금 다르다. 묘비아래에는 떠난 분들의 유골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는데도 별다른 느낌을 받지 않는다. 

맨처음 일본에 와서 묘지가 집옆에 나란히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 수 있을까를 걱정했었는데 이제는 익숙해졌고 봐도 별감정이 없다. 여기는 묘지가 옆에 있어서 집값이 떨어진다거나 하는 경우가 드물다. 매일 일상으로 묘지를 가는 사람들도 있고 묘지 근처에서 축제를 하는 경우도 있다. 

나라마다 추석을 대하는 예는 다르지만 마음만은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묘에 향을 올리기 위해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가는 사람들도 있고, 본인이 못 갈 경우에는 근처에 사는 친척들에게 부탁을 하기도 한다. 유난히 추석 때의 묘지는 생화들로 빛이 난다. 검은색이 대부분인 대리석과 알록달록한 꽃들이 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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